위기의 예술가 시리즈 1

 

더는 젊은 예술가들을 잃어서는 안 되겠기에...

 

 

심상용(서울대학교 교수, 서울대학교 미술관장)

 

 

 

“그들이 꽃이란 꽃은 남김없이 꺾어버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해도 결코 봄의 주인은 될 수 없을 것이다.”

 

-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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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면 뒤에 숨겨진 사회를 날카롭게 파헤친 비평가이자 정치적 진보주의자였고 재능있는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였던 인물 맬컴 머거리지(Malcolm Muggerridge)는 캠브리지 대학의 교육이 자신에게 안겨준 것은 환멸감 밖에 없다고 회고했다. 졸업 후 그럭저럭 성공적인 경력을 쌓아나갈 때까지는 은폐되었던 그 환멸감이 그의 나이 마흔 즈음에 이르렀을 때 존재의 저 심연에서 치고 올라왔다. 그러자 무의미의 연속일 뿐인 삶을 중단하는 것이 마땅하다는데 생각이 이르렀고,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길버트 채스터턴(Gilbert K. Chesterton.1874~1936)에 의하면, 머거리지가 경험했던 그것은 캠브리지나 옥스퍼드에만 국한되었던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것은 당시 영국의 공립대학교의 일반적인 상황이었다. 채스터턴은 영국의 공립 대학교 과정을 망설임 없이 “진리를 사랑할 용기가 꺾이는 과정”으로 요약했다. “모든 점을 고려할 때 영국 공립학교에선 … 진실을 말할 의미를 아주 노골적이고 버릇없이 무시한다.” 고등 과정으로 올라갈수록 “학교에서 진실을 말하는 게 인간된 도리라는 암시조차 주지 않는다” 반면 냉혈이고 냉소적인 직업인 양성에는 비용을 아까지 않는다. 냉소적 지식하기가 단지 온건한 침묵 정도로 그칠 거라고 생각한다면 무식하거나 지나치게 낙관적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채스터턴의 지적은 오늘날의 대학에서 더욱 만연하고 악성화되어, 시(詩)와 예술까지 악의적인 냉소의 범주에 포함시키기에 이르렀다. 대전이 끝나고 1960, 70년대쯤 되었을 때 직업화된 냉소주의가 거의 전 지식의 영역, 학문분과에서 폭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즈음 서구의 대학들은 히틀러와 나치가 자행했던 인종학살에 대해서조차 분명히 잘못된 거라고 말하기가 머뭇거려지도록 만드는, 첨예한 사상과 시대 담론으로 둔갑한 냉소와 회의를 다음 세대에 주입시키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로부터 다시 반세기가 지난 오늘날의 고등교육 과정이 비극으로 점철되는 역사와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도록 만드는 깨달음과는 동떨어진 채“부자들의 편견을 현학적으로 재현할 뿐인 것들”로 채워지고 있는 것은 차라리 자연스러운 귀결일 것이다. 채스터턴의 표현을 빌자면 이러하다. “현대 세계에서는 학문의 쓰임새가 아주 다양하지만, 주된 용도는 부자들의 잘못을 덮기 위해 글자를 잇고 기워서 긴 단어를 새로 만드는 데 있다.” 한, 두 단어만 바꾸면 이 진술을 훨씬 덜 편견에 찬 것으로 보이도록 만들 수 있다. ‘이 시대의 잘못을 덮기 위해 형태와 색을 이리저리 덧대고, 자의적인 담화를 기워 붙이는 일에 몰입하는 기술자로서의 예술가들’을 양산하는 것이 이 시대의 차디찬 냉소로 가득 찬 예술교육의 실상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이 냉소적인 기술자의 영혼을 지닌 예술가들에 의해, 덧없는 우상이거나 고가사치품인 아니면 그 둘 다인 예술품들의 은총이 쏟아져 내리는 중이다. 그것들을 지지하는 담론들은 아침에는 영혼의 궁극적인 해방구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다가 저녁에는 투기적 광기의 온상으로 전락하는, 그 자체로 이 시대의 재현인 분열증을 앓는 지식을 경주한다. 예술가는 영웅적인 투사(鬪士)와 브랜드 마켓터 사이를 부지런히 왕래하는 중이다. 예술감상은?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기형화 된 소비시장의 일환으로 흡수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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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어지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흔한 넘어짐의 형태로서 시대의 흐름을 따르는 것은 쉬운 일이다. 현대 사조에 순응하는 일은 저항하지 않은 채 가만히 있으면 되는 일이다. 그것을 굳이 큰 사회적 비용을 들여 가르칠 필요는 없다. 흐르는 대로 떠내려가지 않는 것, 살아 숨 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고, 따라서 애를 써서 가르치고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넘어지는 방식이나 모양은 무한하고 다양한 반면, 제대로 서는 각도는 오직 하나 곧 직립 뿐이기에, 그렇게 하는 길이 고등한 교육과정이 다뤄야 할 내용이다.

  이 순간을 영원을 살 듯 뜨겁게 살아내는 일, 바로 예술의 노선이자 예술가의 일일 그것은 그 순간에 이미 잠입해 있는 악성의 것들에 대한 사전적인 인식과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 실행에 의해 가능한 모험이다. 그런데 이 모험을 위해서는, 이 짧은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인 하나의 선결과제가 있다. 이 일, 곧 예술을 위해서는 기꺼이 모험을 끌어안고 시행착오를 기꺼이 견디는 마음인 모험심(spirit of adventure)이 필요하고, 이를 위해서는 자신에 대한 믿음이 선행되어야 하는 것이 그것이다. “모험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먼저 자기 가신을 충분히 믿어야 하고, 모험을 즐기려면 자신을 충분히 의심해야 한다.”

이제 문제가 무엇인지, 넘어지지 않고 제대로 서는 것이 왜 그토록 어려운 일인지가 어렴풋하게나마 인식의 시야에 들어온다. 이 시대가 자신과 세계에 대해 믿음이 아니라 회의와 냉소만을 가르쳤기에, 붙잡지 않는 방식이 몸에 배는 동안 붙잡아야 하는 이유는 망각했기에 자신에 대한 믿음도, 모험심도, 뜨겁게 살고 사랑하는 고도의 노선인 예술도 모두 제 기능을 못하는 불구가 되고 마는 것이다.

 

   앞서 언급했던 말컴 머거리지는 캠브리지에서 보냈던 4년이야말로 그의 인생에 있어 ‘가장 쓸모없고 암울했던 시기’였다고 술회한다. 캠브리지가 자신에게 제공한 것은 당대 지식계에 넓게 퍼져있던 “진실에 대한 냉소적이고 방종한 무관심과 그로부터 오는 헤어나오기 어려운 무력감 뿐이었다”는 것이다. 예술대학이라는 치열한 현장에 몸담고 있는 당사자로서 젊은 예술가들이 진실을 향한 용기와 열정의 함량을 키우는 일에 회의감과 무력감을 느끼고, 환멸이나 혐오의 심리적 단층으로 빠져드는 모습, 드물게 스스로를 죽음으로까지 몰아가기까지 하는, 주목할만하게 증가하고 있는 젊은 예술가들의 좌절의 심화된 형태들을 목격하는 것은 몹시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 자체 삶의 역동성을 내재하는 창조성을 핵심 가치로 여기는 예술의 영역에서 인간이 처한 위기가 오히려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 현상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시대를 살고 있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주는 단초가 아닐까. 그렇기에 나는 질문을 다시 내게로 돌릴 수밖에 없다. 나는 미래의 시인과 예술가들에게 ‘진리를 사랑하는데 필요한 용기’를 전수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가? ‘이 시대의 잘못을 덮기 위해 형태와 색을 이리저리 덧대고, 자의적인 담화를 기워 붙이는 일에 몰입하는 기술자’로서의 예술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정성껏 차려진 오찬이요 만찬으로서의 예술을 전수하는데 필요한 덕목들, 요구되는 저항의 불씨를 꺼트리지 않는 일, 그 기반이 되는 신념과 용기를 지치지 않고 추구하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