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예술가 시리즈 2

 

NFT 열풍 읽기 11)

 

 

심상용(서울대학교 교수/미술사학 박사)

 

 

 

  “Quo Vadis, Domine”(쿼바디스 도미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레오나르도의 예수 그리스도의 가슴까지 나오는 정면 초상화인 <살바토르 문디>(구세주)는 1904년에 촬영된 그것은 형편없는 모습이었다. 아마추어가 그린 것이 틀림없었고, 당연히 가짜로 판명난 상태였다. 그렇지 않다면, 1958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불과 45파운드에 매매되었을 리가 있겠는가. 2005년 미국 아트딜러 협회는 이 그림을 1만 달러에 구매했다. 이후 원작의 덧칠과 가필된 상태임이 밝혀지고 원작 복원이 이루어지면서 네오나르도의 진품으로 간주되었고, 사적 거래를 통해 그림의 주인은 러시아의 올리가르히(oligarch. 신흥부자)인 드미트리 르볼로프레프(Dmitry Rybolovlev)-프랑스 축구팀 AS 모나코의 구단주인- 로 바뀌었다. 드미트리는 이 구매에 1억 2천 7백만 달러를 지불했다. 2017년 11월 15일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4얼 5천만달러에 매매되었다. 추정가가 1억이었음을 감안하자. 경매가 진행되는 극히 짧은 시간 4배 이상 가격이 뛴 것이다.2)

   2021년 네오나르도의 이 그림이 밴 루이스(Ben Lewis)라는 크립토 작가에 의해 NFT로 만들어졌다. 제목은 <Salvator Metaversi>로 바꿔 달았다. 달라진 것이 또 하나 있다. 또 하나 있다. 그리스도의 왼손에 들여져 있던, 희생을 통해 구원한 지구를 상징하는 투명한 구슬이 지폐뭉치로 대체된 것이 그것이다. 그리스도의 신성한 구원조차 자본 앞에 무릎 끓리는 시대, 벤 루이스에 의하면, 그것이 단지 비유로만 그치는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의 ‘기도하는 집’조차 투전판 화 되는 마당이니 예술이야 오죽하겠는가! 달러 뭉치를 손에 쥔 부자-철부지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그만한 것이 없을 지경이다.  “그때 시몬 베드로가 “주님, 어디로 가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지금은 내가 가는 곳으로 따라올 수 없다. 그러나 나중에는 따라오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지금 그 ‘나중’이 부단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중이다. 벤 루이스는 이런 세태의 비판을 담아 만든 것이니만큼, <Salvator Metaversi>만큼은 절대 팔지 않을 거라고 다짐한다.

 

 

   예술가의 증발

 

   미술의 향방을 가름하는 사건의 소식이 경매장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지는 이미 꽤 되었다. 진정한 사건의 출처로서 비엔날레는 뒤로 밀렸고 미술관은 거의 시야에서 사라질 지경이다. 2021년 3월 11일의 경매는 또 하나의 사건으로, 이번에  ’경이로운‘ 경매장 망치 소리의 주인공이 된 것은 사람이 아니라 NFT였다. 오늘날 미술품 경매장에서는 사실 그가 예명 비플(Beeple)로 활동하는 마이크 윈켈만(Mike Winkelmann)이라는 실존 인물이라는 것조차 부차적인 사안이다. 그가 지난 13년간 만들거나 수집했다는 5,000개의 디지털 이미지도, 제법 시적 향취를 풍기는 제목 <매일: 첫 5000일(EVERYDAYS: THE FIRST 5000 DAYS)>도 부차적이라는 점에선 매한가지다. 결정적이고 최종적으로 의미있는 것은 6,930만 달러, 곧 매매가다! 진정한 역사적 사건의 자리를 꿰찬 경매가 진행되는 동안, 그의 삶, 그의 과거와 그 여정, 그의 철학과 예술론은 생각할 겨를이 없고, 그렇게 해야 하는 근거도 없다. 이 동네에선 비플처럼 본명이 아니라 디지털 예명을 선호한다.

   작가는 더는 고졸한 정신세계의 경작자로서 등장하지 않고, 그것을 구매할 소비자도 없기에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 잠시 동안 익명의 우상이 되었다가 벼락부자가 된 사람들의 목록에서 어렵게 한 자리를 얻어 꿰차는데 성공한 사람으로 묘사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 편이 최종적으로 명예로울 것인데, 그것을 넘어서도록 만드는 힘인 가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익명성이라는 악마의 유혹이 조용히 목전으로 다가오는 중이다. 이것이 이 사건의 진면목들 가운데 하나인 예술가의 증발이고 인간의 산화(酸化)다. 예술가 없는 예술의 다음 단계는 아마도 인공지능으로 대체된 예술일 것이다. 중심이 빠르게 텅 비어 가고 있다.

 

 

   속도

 

   이 사건이 일어난 곳은 뉴욕 5번가에 위치한 크리스티의 뉴욕 지사다. 뜨겁게 달아오르기를 학수고대하면서 NFT 시장을 둘러싼 ’쩐의 전쟁‘에 크리스티가 불을 당겼다. 세계 예술품, 수집품 경매의 80% 이상이 양대 경매사-크리스티와 소더비-의 매출이니 전형적인 독과점 형태의 시장이다. 진실에 다가서려면 두 눈을 크게 떠야 한다. 비플의 <매일: 첫 5000일>의 경매는 2월 25일부터 3월 11일까지 총 15일간 진행되었지만, 경매가 시작되자마자 불과 8분 만에 100달러에서 시작된 가격이 1,000,000달러로 치솟았다. 이런 일이 가능하려면 적어도 두 개의 두 조건이 반드시 충족되어야 한다. 의심스러운 취향(suspicious taste)과 막대한 재력(huge wealth), 낭비벽(spendthrift habits)을 동시에 갖춘 소수의 개인과 조작적인 풍조를 기반으로 하는 강력한 비즈니스 시스템이 그것이다. <매일: 첫 5000일>의 경매는 이 시대가 그 두 조건을 충분히 갖춘 시대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일 뿐이다. 스위스의 미술품중개상이자 프랑스 소더비의 전 책임자였던 마크 블롱도(Marc Blondeau)는 경매회사의 경영전략과 일반적인 회사들의 그것 사이에 어떤 차이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소더비나크리스티에서 예술성, 예술적 가치의 고려는 사업적 확장만을 생각하는 행정부서의 힘에 밀려 방향을 상실했다. “미술시장이 ‘돌연’ 투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유일한 목적은 미적 수준과 무관하게 가격을 올리는 것이다.”

   100달러에서 백만 달러까지 시작된 치솟는데 걸린 8분이 사건의 서막이라면, 클라이멕스는 숨을 고르는 듯 머물렀던 1,400만 달러 선을 뚫고 단숨에 6,930만 달러까지 솟구치는 마지막 10분이다. 글로벌 미술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그것이 천사의 강림이건 악마의 속삭임이건 이 사건을 구성하는 중심은 ‘짧은 시간’이다. 채 몇 분이 안 되어 사건이 종결되고 역사의 페이지에 편입되는 것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니얼 퍼거슨(Niall Ferguson)에 의하면 이 ‘짧은 시간’이야말로 지난 세기 미국이라는 이름의 신흥 제국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의 이름이다. “비현실적으로 짧은 시간”에 정치, 경제를 포함한 모든 변화가 가능하다는 믿음 말이다.3) 실제로 경매의 첫 8분과 마지막 10분 동안 단지 가격만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 속도는 중심이 텅 비어가는 속도요 도덕적 공허가 팽창하는 속도이기도 하다. 빠를수록 자발성이 현저하게 위축되기에, 그것은 지적, 감정적 공허가 냉소주의를 호출하는 속도고, 예술 가치와 화폐가치의 오랜 균형이 순식간 무너져 내리는 속도다. 이성과 진리를 사랑하여 모여든 논객들을 서둘러 내쫓고 그 자리를 새롭게 몰려든 투전꾼들로 채우는 속도다. 더는 경작 자체가 불가능한 예술적 산성화가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접어드는 관문이다. 그 관문을 통과한 다음은? 지금 우리가 추구한다고 낙관적으로 자만하고 있는 것들의 사막화일 것이다.

  1. 글의 제목을 ‘NFT 열풍 읽기 1’로 한 것은 이 글의 뜨거운 이슈인 NFT 현상에 대한 일부분의 읽기임을 밝히기 위함이다. 파주 아트벙커의 ‘비평 에세이’ 시리즈에서 ‘NFT 열풍 읽기 2’를 보기는 어려울 것이지만, 필자는 다른 지면을 통해 이 주제에 대한 비평적 읽기를 지속해 나갈 생각이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과 다른 지면이나 논의의 장에서 다시 만나기를 기대한다.

  2. 구매자는 아랍에미리트연합(UAE) 아부다비 정부의 문화광광부임이 공식 확인되었다.

  3. 리처드 코치, 크리스 스미스, 『서구의 자멸』, 채은진 옮김(서울: 말글빛냄, 2008) p.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