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예술가 시리즈 3
<응답하라 작가들> 7년 이후: 콜로퀴움 이후의 단상(斷想)들
고동연(미술사가)
필자는 올해 8월 ‘예술가의 부업’에 관한 콜로퀴엄을 기획하고 사회를 보았다. 2014년 <응답하라 작가들>이라는 제목의 전시를 개최하고 이듬해 동일한 제목으로 10여명이 넘은 예술가와 기획자의 인터뷰 책을 발간한 이후 지난 7-8년(전시준비 과정포함) 동안 어떠한 변화가 일어났는지를 알고 싶어졌기 때문이다. 2013-2014년 이후 ‘신생 공간,’ ‘미술생산자 모임’ 등의 단체들은 2010년대 하반기부터 점차로 존재감이 사라지거나 스스로 해산하였고, 운동을 주도했던 몇몇 작가들이 정부 기관에 자문하는 방식으로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당시 운동을 이끌었고 예술가와 노동의 문제에 관심을 지녔던 작가들은 30대 중반의 잘나가는 작가나 기획자가 되었고, 필자와 함께 예술가의 생존 문제를 꽤 오랫동안 고민하고 함께 전시했던 <응답하라 작가들>에 참여한 작가들은 이제 40대에 접어들거나 50대에 이르렀다. 이에 시대적인 변천사나 거리감을 감지할 수 있는 단계에 놓이지 않았나 하는 기대감을 갖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최근에는 예술가를 위한 고용법이 국회에서 통과되었다. 당장 큰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니지만 제도가 안착되기 위해서, 그리고 법령으로 예술가의 법적이고 경제적인 지위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정치권에서도 일어나고 있는 마당에 미술인 스스로가 대화에서 소외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역할을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특히 친한 작가와 나누었던 대화가 콜로퀴움을 개최하게 만든 기폭제가 되었다. 전언에 따르면, 모든 시각적인 이미지가 드론, 앱을 비롯하여 나날이 발전되어가는 기술적 수단을 통해서 만들어지고 유통되면서 예술가들의 알바도 변화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디지털 매체의 변화가 회화나 드로잉을 하는 작가에게도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수 있는 말에 필자의 귀가 솔깃해졌다. 비평가나 이론가의 역할이 생산적인 의도를 가지고 대화의 통로를 열고 이야기와 정보를 확산시키는 일이라면 할 일이 생겼다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번 이야기해보자. 정말 어떤 변화들이 일어났는가?
디지털 환경의 변화와 작가의 부업
전시 직후 펴낸 인터뷰 책 <응답하라 작가들: 우리 시대 미술가들은 어떻게 사는가>이 중요시 했던 질문은 “어떻게 먹고 살아가는가”였다. 당시 아카데미나 문화예술기관이 최선의 정책으로 다루기 시작한 작가비나 계약서는 작가들의 기본적인 생계비와는 무관한 이야기였다. 작가비를 받는다고 해서 그것을 생활비에 사용하는 작가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2000년대를 거치면서 국내 미술대학의 입시지평이 크게 변하였다. 당시 참여한 작가의 연령대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었기에 미술학원 강사, 작업실 어시, 영화제 보조, 번역 등의 통상적인 알바는 점차로 보다 젊은 작가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시점이었다. 따라서 ‘작가의 세컨잡’ ‘부업’은 매우 중요한 쟁점이 될 수 밖에 없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작가의 세컨잡이 이야기하기 편한 토픽인 것은 아니다. ‘부업’이라는 단어는 작가들로 하여금 작업을 할 수 있는 여분의 시간을 허용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유연한 노동의 형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작가에게 부업은 노동과 임금의 안정성이 거의 보장되지 않는 ‘불편한 진실’에 해당한다. 이에 올해 열린 ‘응답하라 작가들’의 콜로퀴움은 현재의 시점에서 작가의 부업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새로운 부업의 형태로는 무엇이 있을지에 초점을 맞추었다. 적어도 사회자로서 필자의 질문은 그랬다. 그래서 던진 질문을 부연하자면, AI와 같은 대체적인 디지털 기술이 발전하고 있는 시대에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일에 종사하는 예술가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어떻게 경제적인 이득을 취할 수 있는가? 가능하다면 예술가로서의 자유와 위상을 지키면서 말이다. 이때 참여한 사진 작가에 따르면, AI가 고도로 발달하게 되면서 더 이상 거대한 업체가 영상이나 이미지를 대신 만들어주는 일은 점점 사라졌다는 것이다. 비견한 예로 일반인들도 앱 서비스를 사용해서 자신이 직접 만들 수 있게 되자 홈페이지를 만들어주던 업체들이 사라진 현상을 들 수 있겠다.
AI가 고도로 발달되고 하다보니 고도의 기술을 갖고 있는 사람이 사진을 찍을 필요가 없게 돼요 그러다 보니까... 디자이너들이 그냥 자기네들이 사진을 찍어서... 올리게 돼요. 기존에 사진과를 졸업한다거나 사진을 전문적으로 담는 븐들에게서 들었는데 시장 자체가 좁아[진데다가] 여기는 이제 별다른 큰 기술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니까 오히려 이번에는 아마추어들이 시장에 투입을 하게 되고 시장 자체에서 학력이나 전문성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되거든요. (콜로퀴움 중)*
결과적으로 다양한 전문인력의 층위가 사라지게 되고 기존의 전문 인력들이 대형프로덕션에 합류하거나 소규모의 1-2인의 유동적으로 움직이는 스튜디오만이 남게 되는 일종의 규모의 ‘양극화’가 생겨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원컨데는 디지털 매체를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고 대안적인 이미지와 관점을 제공할 수 있는 작가들이 기존 전문인들의 카르텔이 무너진 이미지 생산과 유통 시장에서 ‘틈새’를 노려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비전문가 중의 전문가’로서 말이다.
물론 순수 예술가들이 틈새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철저하게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수요의 원리를 예술가들이 어떻게 수렴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생존’이라는 명목을 위해서 적응해야 할지 쉽지 않은 문제이다. 게다가 가치와 평가에 대한 기준 또한 지나치게 혼동스러운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체의 표현수단이나 유통방식에 있어 예술가들이 스스로 경험하고 있는 변화를 어떻게 세컨잡에 활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매우 필요하다. 모든 지식과 정보와 상황을 활용하려는 적극성과 유연성이 작가 부업의 번창하게 하는 기본요건이 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아쉬운 결과: 예술가와 기업의 협업이 던지는 질문들
이외에도 콜로퀴움은 작가와 기획자가 현장에서 경험한 생존방편, 기금, 직업, 노동의 종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급된 예 중에는 2014년 <응답하라 작가들>의 전시가 열리고 책이 발간되던 즈음부터 이미 예술경영지원센터 및 예술인복지재단가 시작한 예술가와 기업체의 협동 프로그램도 있었다. 그러나 콜로퀴엄을 진행하면서 받은 인상은 지난 7-8년간 목적에 부합되게 발전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작가들로 하여금 산업체와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개발하는 경험을 해보고 추가 프로젝트를 위한 유의미한 ‘기금’을 마련하는 것이 그 목적이어야 한다면, 그다지 성공적으로 흘러가고 있지 않아 보였다. 특히 코로나를 거치면서 무차별적으로 국공립기관이 관장하는 기금의 종류가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 예술가 스스로 부업을 개발해보는 기회를 마련한다는 예술인복지재단의 프로그램들이 일반 국공립 문화예술기금과 어떻게 차별화되고 있는지 콜로퀴움에 참여한 작가의 발언을 통해서 유의미한 단서를 찾을 수는 없었다. 이윤창출이라는 목적은 차제하고라도 기업과 예술인의 협업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어려운지에 대해서 정책적인 측면에서 지난 7-8년간 고민이 거의 부재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실제로 예술가와 기업의 협업을 둘러싸고 여러 질문과 모순이 발생하기 마련이다. 왜 기업이 예술의 분야와 협업하고 싶어할런지, 현재 교육이나 문화정책기관이 기업과의 협업을 기획하고 진행할만한 전문성을 갖춘 인재를 보유하거나 양성할 수 있는지, 협업의 성공은 무엇을 기준으로 보아야 하는지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질문들이다. 효율성을 중시하고 현대미술을 오히려 버겁게 여기는 각종 기업체의 홍보부서 인력이 예술인과 어떻게 진정으로 세밀하고 생산적으로 협력관계를 이끌어낼수 있을지, 왜 그래야 하는지 필자가 2008-2012년까지 기업과 연관된 일을 하면서 스스로 떠올렸던 수 많은 질문들에 대한 답변은 아직도 요원해 보였다.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정책의 경험자, 기업 협업의 성공사례, 기업과의 협업이 일구어내는 성공을 다각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시스템 등, 여러 가지 여건들이 필요하겠지만 콜로퀴움을 통해서 뭔가 단서가 될만한 이야기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성공한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기업과 협업하는 작가들의 경우 아직도 ‘개인기’에 의존하고 있어 보였다. 물론 그러한 ‘개인기’를 모아서 다른 미술인들에게 전달하는 것이 현장비평가나 문화정책 연구가의 소명이겠지만, 얼마나 생산적인 정보를 파헤치고 확산시킬 수 있을지 콜로퀴움을 통해서 쉽지 않은 문제라는 사실을 새삼 확인하였다. 일례로 예술가로 구성된 잘 나가는 설치 작가들의 업체는 존재하여 왔다. 미술사에서 잘 알려진 1950년대 자스퍼 존스와 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예로부터 2000년대 중반 국내에서도 붐을 이루기 시작한 행사용 인테리어, 나아가서 특화된 전시 디자인을 통해서 기업과 유연한 관계를 이어온 예에 이르기까지 조각이나 설치 작가들은 문화예술분야의 특화된 인테리어나 디스플레이, 행사 관련 일을 지속적으로 맡아왔다. 하지만 이러한 협업관계가 어떻게 발전되고 있는지를 세밀히 알고자 하는 것이 자칫 ‘업체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한 노력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작 성공한 경우일수록 핵심적인 전략을 노출하게 강요하는 것은 부적절하기는 하다. 예술인들의 경제적인 궁핍을 근거로 누군가에게 정보공유를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에필로그: 예술인 고용법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오가는 가운데 올해 여름에 통과된 ‘예술인 고용법’에 대한 이야기로 이 글을 마치고자 한다. 고용법은 이제까지 4대 보험을 비롯하여 문화예술인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기 위한 목적으로 국회에서 발의되고 통과되었으며 12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근저에는 ‘고용’을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의 관점이 아닌 프래랜서를 포함해서 최근 플랫폼 이코노미를 통하여 재원을 만들어내는 다양한 노동자를 포괄적으로 바라보고자 하였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아울러 예술인 고용법에 따르면 단기로 전시기획에 참여하는 작가들에게는 요구하는 경우 보험료를 지불할 수 있게 된다. 구체적으로 유명 국공립미술관에서 전시를 하는 경우가 아니더라도 전시와 같은 예술가 본연의 활동이 노동의 형태로 인정받고 소액이지만 사회적인 안전망의 혜택을 받는 요건을 갖추게 된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게다가 다양한 층위와 매체의 예술가들이 각종 활동을 통해서 얻게 되는 경제적인 이익에 대한 구체적인 통계를 얻을 수 있게 된다는 점에서도 매우 유의미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예술인들의 경제적인 행위가 기존의 노동이나 고용이론이 정의하는 범주를 넘어서 존재할 뿐 아니라 이제까지 공식적인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거나 포함될 수 있는 예술가는 미술계에서 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은 전에 비하여 공신력을 확보한 상태에서 별도의 강제성 없이 보다 다양한 작가그룹과 작가들의 경제적인 활동의 행태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매개수단이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용보험을 의무화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독립기획자. 열악한 미술기관의 사정 또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특히 열악한 문화예술기관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고용보험이 을과 을의 갈등관계를 야기하는 예상치 못한 결과를 초래하지 않도록 고용보험과 연관된 재원을 다양한 방식으로 독립기획자나 재정적인 후원이 필요한 문화예술기관에 후원하는 방식에 대한 논의가 추가로 필요하다. 이 글에서는 다루고 있지 않지만 예술가에 비하여 숫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예술가만큼이나 고용시장에서 제외되거나 불안정한 경제적 상황에 내몰려 있는 기획자, 이론가들에 대한 관심도 시급하기 때문이다. 혼동의 시대, 예술가의 생존과 부업의 문제는 시급한 만큼이나 각 시기의 상황을 기억해가는 작은 노력을 필요로 한다. 잡담 형식의 이 글이 아직도 불안정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예술가의 사회적 지위를 기록하고 기억하는데 보탬이 되고자 한다.
* 콜로퀴움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는 조건으로 진행되었기에 모든 발언은 무기명으로 표기하였다. 또한 본 글은 사회자이자 관찰자 시점에서 필자의 이전 경험과 콜로퀴움에서 받은 인상을 위주로 작성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