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예술가 시리즈 5

 

호황과 불황 사이의 미래

 

 

김노암(아트스페이스 휴 아트디렉터)

 

 

 

미술시장이 호황이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아트페어가 생기고 또 온오프라인의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작품이 소개되고 거래된다고 한다. 동시에 주식과 전자화폐에 투자하던 젊은 세대가 미술품 구매에 적극적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미술시장의 호황은 대략 10년을 간격으로 반복해서 벌어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전후해 80년대 말에서 90년대 초, 2005년에서 2008년 사이, 그리고 2021년 지금.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많은 관객이 몰리고 미술거래가 빈번해졌다. 그 배경에 대해 많은 분석이 있겠지만, 여러 원인들이 작용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임에는 틀림없다. 사람들이 미술에 관심을 갖는 이유로는 대체로 정치경제적 안정기 또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비전에 기인한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된 계층 또는 계급의 문화예술에 대한 욕구와 소비의 증대는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그 외에도 금융자본주의가 세계화되는 과정에 금융과 자산으로서 미술이 결합하는 것도 한 원인일 것이다. 자본주의의 욕망은 이윤을 찾아 자산가치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는 달려간다. 

그런데 현재 우리나라는 이러한 미술시장의 붐을 통해 정치경제적으로 안정적이며 미래에 희망적인 비전이 풍부해졌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주저하게 된다. 무엇보다 불과 몇 년전까지도 인구절벽, 삼포세대, 청년위기 등 미래를 어둡게 진단하게 만드는 사회 문제들이 많았다. 또한 팬데믹으로 인해 자영업자들, 중간계층이 전지구적으로 몰락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절망적 상황에서는 더더울 미술시장의 호황에 대해 기이함과 불편함을 갖지 않을 수 없다. 

사실 미술시장의 호황이란 아주 소수의 갤러리와 미술가들에게 집중되곤 했다. 현재도 그런 인상이다. 주변의 어느 미술인들을 만나도 미술시장의 호황을 체감하는 이들은 매우 드물다. 그러니 호황이라는 달콤한 뉴스는 사실 풍문으로 그치곤 한다. 게다가 미술시장에서 주목받은 작가들, 주제들이 미술계의 전체 담론을 이끄는 것도 아니다. 새로운 미술의 미래를 여는 것은 일부 상관관계는 있을지언정 미술시장의 호황이나 불황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미술시장의 호황이라는 유령은 때만 되면 돌라오는 계절풍과 같다.

영국의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자본주의의 치명적인 결점을 완전 고용을 보장하지 못하는 동시에 부와 소득을 제멋대로 불공평하게 분배하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러한 자본주주의 결점이 사라지지 않는 한 자본주의는 계속 고도로 불안정할 것이며 호황에서 재앙과 같은 붕괴로 이어지는 변동에 취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공황경제론의 대가인 김수행은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경제는 끊임없는 지속적인 불황과 그 사이사이 아주 짧은 기간의 간헐적인 호황의 반복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경제적 호황의 꽃이라고 볼 수 있는 미술시장의 호황을 순수하게 기뻐하기 어려운 것이다. 곧 아주 이른 시기에 시장의 불황을 다시 마주해야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런 지속적인 변동과 불안은 개인과 가정, 사회를 위험에 빠뜨리고 결국에는 예술의 원천인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력을 제약할 것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불안이 반복되고 가중되면 겁을 먹게 된다. 기가 꺽기면 어떠한 창의도 기대할 수 없게 된다. 너무 강한 위기는 소수의 개인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가 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위축과 좌절을 피하기 어렵다. 몇몇 예외적인 영웅적 성공의 신화로 미술사가 채워지기도 하지만 위기를 기회로 삼아야한다는 막연한 낙관론은 더 큰 고통과 더 큰 위기를 낳을 수 있다.  

 

청년작가들의 위기에 대해 이해하자면 예술의 위기에 앞서 청년의 삶의 위기, 청년의 가족을 포함한 청년이 속한 사회의 위기를 생각해야 한다. 미술작품을 구매할 정도의 충분한 부를 축적한 계층이 폭넓게 확산되어야 더 다양한 미술작품의 생존기반이 마련될 수 있다. 일본의 경우처럼 국가와 기업은 돈을 부자가 되는데 개인은 가난해지는 시대로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가 개인에게 준 것은 더 냉혹해진 경제현실이며 소득분배의 왜곡이다. 미술시장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가? 오히려 미술시장의 호황은 이러한 소득분배의 절벽 또는 왜곡의 징후는 아닐까?  코로나가 야기한 세계적인 대불황의 시대에 개인과 가정은 위기에 빠지고 해체되는 현상을 우리는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보아왔다. 원인이 무엇이건간에 개인과 가정과 사회를 위기에 빠트리는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적 위기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위기는 희망의 다른 말이다. 위기란 기회라는 말이 흔히 알려졌지만, 누군가에게는 기회로 이해하기에 너무 엄혹한 상황에서 위기를 접한다면 그 위기는 결코 기회로도 또는 다음에 올 희망으로도 느껴질 수 없다. 이는 어쩌면 위기에 대응하는 개인이 지닌 기질 이상으로 그 개인이 속한 사회와 문화의 특성과 관련된 것이 아닐까. 어떤 사회는 동일한 조건 속에서도 동일한 수준의 위기 속에서도 출구를 마련하고 문제 없이 버텨내며 새로운 단계로 진입하는데 바핸 어떤 사회는 좌절하고 침몰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미술시장의 호황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호황의 구체적인 효과가 미술작품의 주제적 또는 형식적 종다양성을 풍요롭게 하였는가에 달린 것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