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예술가 시리즈 6

 

"다시 예술가 선언문을 쓰자"

 

캐슬린 김 (미국 뉴욕주 변호사/홍익대 문화예술경영대학원 겸임교수)

 

 

 

“손가락마다 검댕이 묻은 즐거운 방화자들을 들이자! 여기 그들이 있다! 여기 그들이 있다! … 어서 오라! 도서관 책장에 불을 질러라! 운하의 물길을 돌려 뮤지엄의 서고가 범람하게 하라!...  오, 영예로운 오래된 그림들이 찢어지고, 탈색된 채 물 위에 떠다니는 것을 보는 즐거움이여! 곡괭이를 들어라, 손도끼와 망치를 들어 부숴라, 고색창연한 도시들을 부숴라, 무자비하게! … 그들의 눈에서는 강하고도 온전한 부정의가 찬란하게 빛날 것이다. 예술이란 본디 폭력과 잔인성, 부정의이다 … 세계의 정상에 우뚝 서서 다시 한번 우리는 별들을 향해 당차게 도전장을 던진다.”

 

1909년 2월 20일 프랑스 '르 피가로'지 1면에 실린 유럽에 아방가르드 이념을 만들어낸 미래 주의 운동의 출범을 알리는 '미래주의 창립 선언문'(The Founding and Manifesto of Futurism)이다.

 

활황, 급팽창, 최고가 경신, 아트테크 등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운 미술시장에 대한 보도가 연일 쏟아진다. NFT 아트, 블록체인, 가상자산, 메타버스, Web 3.0 등 생소한 언어들이 예술계에 범람한다. 예술계에 수퍼스타들이 경쟁적으로 최고가를 갈아치운다. 팬데믹으로 세상의 움직임이 둔화되는 것 같은 순간에도 멈추지 않고 초고속으로 달리는 분야가 바로 2021년 예술시장이었다. 시각예술 분야가 이처럼 큰 대중의 관심을 받은 적이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오히려 불안하고 소외되는 감정을 갖게 된다. 저 뜨거운 예술시장의 중심에 서 있지도, 새로운 기회라는 메타버스와 NFT 예술현장에서도 따라잡지 못하고 소외되는 것 같다. 전통적인 예술시장에서도, 새롭게 구축되고 있는 예술시장에서도 나만 뒤쳐진 것 같다. 평소와 다름없이 여전히 작업을 하고 전시를 하고 있을 뿐인데 나를 제외한 모두가 다른 세상으로 떠난 것만 같다. 요즘 많은 작가들이 느끼는 감정일 것이다.

그러나 시각을 조금만 조정해보자. 이제 본격적인 예술창작자의 시대가 열렸다. 점차 많은 이들이 예술을 소유하고 싶어하고, 예술에 자산적 가치를 부여하고, 저작자의 권리가 확인되고 증명되며, 예술가 스스로 시장을 창출하는 예술창작자 중심의 세상이 시작됐다. 기술의 도움으로 웹3.0시대라는 창작자 경제(creator's economy)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2021년 3월 23일부터 4월 11일까지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 100여 명이 모여 그룹전을 열었다. 기존의 전시와 다른 점이라면 기존의 전시장이 아니라 크립토복셀(cryptovoxels)이라는 한 가상 공간이라는 점, 실물 작품이 아니라 NFT화한 디지털 매체 작품이라는 점, 갤러리나 기획자같은 매개자 없이 작가들 스스로 기획한 전시라는 점, 그리고 SNS나 커뮤니티 등을 통해 스스로 홍보하고 세일즈에 나섰다는 점 등이다. 참여 작가들은 이 전시회를 '살롱전'(Salon)이라는 별칭을 붙였다. 정형화된 틀 안에서 고대 신화나 종교적 주제를 다루거나 인간의 숭고함이나 이상적인 가치를 표현한 예술이 진정한 예술이라 믿던 19세기 아카데미 예술의 시대, 프랑스 왕실은 '엘리트' 예술가를 선정해 지원하기 위한 '살롱전'을 열었다. 1863년 마네는 <풀밭 위의 점심>을 '살롱전'에 출품했지만 낙선했다. 5000여 점 중 3000여 점이 탈락했는데 마네처럼 기존의 아카데미즘에 저항하는 진보적이고 혁신적이며 실험적인 예술가들의 작품들이었다. 낙선한 예술가들이 항의하자 왕실은 탈락한 작품들을 모아 '낙선전'(Salon des Refusés)을 열었다. 흥미로운 것은 얼마나 엉망인지 보러온 사람들로 인해 '살롱전'보다 '낙선전'이 더 붐볐고, 젊은 예술가들이나 예술 애호가들은 새로운 주제와 창작 방식에 열광했다. 그렇게 인상주의라는 혁신적 예술 사조가 등장했고, 예술가들은 더이상 엘리트 예술 중심의 선택받은 자들만 참여할 수 있는 살롱전에 연연하지 않았다. 한국 NFT 아티스트들의 그룹전은 마치 '살롱전', '낙선전' 사건의 재현과도 같았다.

NFT와 메타버스라는 새로운 개념의 등장, 그리고 누구나 예술 소장자가 될 수 있다는 젊은 콜렉터나 예술 애호가들의 등장은 예술 창작자들에게 새로운 창작 방식과 수단을 제공하고, 전시와 판매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중개인의 도움없이도 예술창작자 스스로 창작자고 홍보하고 전시하고 구매자와 직접 거래할 수 있는 새로운 채널이 생겼다. 블록체인 기술은 저작자의 권리가 어느 때 보다 중요함을 거듭 확인해주고 있다.

예술창작자들은 새로운 진보와 변화를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수용하고 활용해야 한다. 예술창작자는 누구보다 진보적이고 열려있고 깨어있는 이들이다. 예술을 지나치게 자산가치로만 측정하려하고, 예술창작자의 아이디어와 영혼을 가로채려는 이들이 장악하기 전에 예술가 스스로 나서야 한다. 예술창작자기 예술의 중심이며, 예술시장의 중심은 예술창작자 자신이라고 선언해야 한다. 20세기 예술 현장에서 혁신과 변화를 주도하고 이끌었던 무수한 예술가 그룹처럼 예술의 주체로서 21세기 예술가 그룹을 조직하고 선언문을 쓰자. 그리고 예술의 주권을 회복하자. 위대한 예술은 시간과 유행을 견뎌내는 것이고 견뎌낸 예술은 강한 예술이 된다. 예술의 본질을 세상에 다시 한번 선언하자.